'가르침'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
우리는 ‘가르침’을 너무 당연하게 여깁니다. 교육과정, 수업 목표, 평가 기준을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하곤 하죠. 그러나 네덜란드 출신의 교육철학자 **맥스 반 마넨(Max van Manen)**은 『가르친다는 것의 의미』에서 이 단순한 개념을 철저히 해체하고, 교사와 학생 사이의 ‘교육적 만남’이라는 깊은 인간 경험으로 다시 정의합니다.
전문적인 교사 교육을 고민하는 제게 이 책은 단순한 실천 지침서가 아닌, 교사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철학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텍스트였습니다.
책의 메시지 – 교육은 ‘전술’이 아니라 ‘촉(觸, tact)’이다
반 마넨이 던지는 가장 인상 깊은 개념은 바로 **“교육적 촉(tact)”**입니다. 이는 지식이나 기술보다 관계의 감각, 아이의 존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교사의 태도를 뜻합니다.
그는 교사는 지시하거나 통제하는 존재가 아니라, 아이의 성장과 의미 형성을 섬세하게 도와주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. 이 촉은 수업계획서로 완전히 포착될 수 없으며, 순간적인 판단, 애정 어린 반응, 깊은 인간 이해에서 비롯됩니다.
인상 깊은 가르침과 개인적 사례
1️⃣ 교육적 만남은 ‘예측 불가능한 살아 있는 관계’
책에서는 교사가 아이에게 던진 말 한마디,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의 표정 하나에서 교육적 의미가 어떻게 피어나는지를 수많은 사례로 설명합니다.
이를 읽으며, 유아교육 현장에서 한 아이가 낯설고 무서운 물놀이 시간에 울음을 터뜨리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. 매뉴얼대로라면 설득하거나 환경을 바꾸었을 것입니다. 그러나 그날은 아이 곁에 조용히 앉아 “괜찮아. 준비되면 말해줘”라고 말하고 기다렸습니다. 결국 아이는 10분쯤 후 스스로 걸어 나왔고, 그날 이후 물에 대한 두려움이 점차 사라졌습니다.
이것이 반 마넨이 말하는 교육적 촉의 순간임을 책을 통해 새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.
2️⃣ 교사는 완성된 존재가 아닌 ‘함께 성장하는 사람’
반 마넨은 교사가 늘 ‘모든 것을 아는 존재’일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.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, 아이와 함께 탐구하고 질문하는 자세가 교육적으로 더 풍성하다고 봅니다.
이는 어린이집 실습생과 교사들과 함께 하는 회의 중 자주 느끼는 부분입니다. 나는 어느 순간부터 “이건 나도 잘 모르겠어. 우리 같이 찾아볼까?”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되었고, 그 순간 아이들은 ‘함께 배우는 어른’이라는 신뢰를 더 크게 표현하곤 했습니다.
실천적 통찰 – ‘교사됨’의 재정의
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통찰은 **“가르침은 통제가 아닌 배려”**라는 사실입니다. 교육과정과 결과 중심의 압박이 강한 현실에서, 반 마넨은 다시금 교사의 정체성을 ‘존재와 태도’로 확장시켜줍니다.
실생활에서 저는 다음과 같은 실천을 시작했습니다:
- 수업 전, ‘오늘 내가 아이에게 진심으로 주고 싶은 감정은 무엇일까’를 떠올립니다.
- 실습생이나 신규교사와의 피드백에서도 ‘정답 제시’보다 ‘느낌 묻기’를 통해 스스로의 교육 촉을 키우도록 도와줍니다.
- 교실에서의 작지만 중요한 순간들—예컨대 아이가 눈을 피하거나 말이 없을 때—그 신호를 관계의 요청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합니다.
🧭 장단점, 추천 대상, 세 줄 요약
✅ 장점
- 교사의 존재 의미를 단순한 ‘지식 전달자’에서 ‘인간적인 배움의 동반자’로 심도 있게 확장
- 실제 교육 장면과 이론의 조화를 통해 철학과 실천을 연결함
- 번역서임에도 불구하고 문장이 섬세하고 깊이 있어 독서의 여운이 길다
❗단점
- 교육 철학적 개념이 많아 교육학 초심자에게는 어려울 수 있음
- 실천 팁이나 구체적인 교수법이 많지는 않음
🎯 추천 대상
- 유아교육, 초중등, 고등교육을 막론한 현장 교사
- 교사 교육 및 리더십을 고민하는 원장, 교육전문가
- 실습생, 예비교사, 또는 교육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고 싶은 독자
✍️ 세 줄 요약
- 『가르친다는 것의 의미』는 교육을 지식 전달이 아닌, 아이와의 깊은 관계 맺기와 존재적 만남으로 재정의한다.
- 반 마넨의 ‘교육적 촉’ 개념은 삶 속에서 가르친다는 행위가 갖는 인간적인 차원을 되살려준다.
- 교사와 교육자는 이 책을 통해 ‘어떻게 잘 가르칠까’보다 ‘어떤 사람으로 아이 곁에 있을까’를 고민하게 된다.
“가르침은 기술이 아닌 감각이며, 태도이며, 존재다.”
이 책은 교사의 손에 들려야 할 철학서이자, 교실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인간학적 안내서입니다.
지금 가르치고 있는 당신에게, 이 책은 조용히 묻습니다
.
“당신은 어떤 존재로, 아이 곁에 머물고 있습니까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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